박수진 초대전
얄팍한 선, 겹겹의 위로
2026.07.25 - 2026.08.20
#살아냄을 증명하는 선들의 공명
절망과 고통의 ‘드러냄’을 통한 희열을 깨닫는다. 인간은 감정을 가진 존재이고 관계맺음을 통해 소통 불능의 절망과 고통의 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 모두가 같은 존재일 수 없고 각각의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온 삶이 있기에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 또한 완전히 다르다.

그렇게 오해가 쌓이고 미움이 생기고 증오가 키워져 인간의 내면은 암흑 속에 파묻히게 된다.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 타자의 시선과 응시에 의해 정의되고, 그것들에 맞춰 살거나 그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려 발버둥 친다.

그러면서도 그로 인한 부당함에 저항하고 분노한다. 하지만 수직적인 관계 혹은 권위적인 세태 속에 현재의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 보일 방법 따위는 없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듯 복종하고 받아들이면서 몰개성적으로 살아가는 것만이 최선이다.

나의 작업은 그로 인해 쌓아 올린 고통을 어둠 밖으로 표출하는 과정이다. 이 작업은 그림이 내놓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연필과 비슷한 속성을 지닌 색연필이 캔버스에 부딪히며 내는 파열음과 굵기가 달라진 색연필의 흑연 부위가 만들어내는 소란, 팔의 운동 범위에 따른 마찰의 길이 정도 등 청각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자극이 내 감정을 고양하고 위로하는 일련의 훈련이나 명상의 과정이기도 하다. 마찰음이나 검은 화면 위에 드러난 빛의 흔적은 자연의 생성 원리와 복구의 정신성의 은유적 행위물로 간주한다.
그래서 그려지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며, 등장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은 ‘억압된 감정’의 표출 행위로 묘사된다. 대부분 그로테스크한 표정 혹은 몸짓을 하고 있다. 소통 불능으로 빚어진 감정을 어떻게든 해소해 보려는 나의 발버둥이다.

마음속에 일어난 어떤 감정과 생각을 객관화시키고, 명확히 들여다보면서 당시의 아팠던 감정을 해석하고 상처를 한 단계 상승시킨다. 인간을 두려워서 거부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아픔마저 승화시켜 진정한 관계로 나아가야 할 존재로 보기 위한 시점 변화의 작업이다. 이 사회 안에서 살아내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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